보이지 않는 세계, 유리를 통한 빛의 직조
투명의 세계는 본디 우리 곁에 있지만, 그것을 온전히 포착하여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은 어렵다. 이코나(Yicon_A) 작가는 유리구슬, 시글라스(sea glass), 그리고 거미줄(명주실)이라는 이질적 재료들을 주요 매체로 활용해 한 화면에서 만나게 하며, 동서양의 영성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개인적 체험과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 조형 언어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빛으로 새긴다.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지각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모든 보이는 것 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코나의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적 철학적 틀을 제공한다. 그녀의 유리 작업들은 물질의 투명성을 통해 가시성과 불가시성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러한 투명성의 미학은 12세기 고딕 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 전통과도 깊이 연결된다. 색유리를 통과한 빛이 물질적 현실을 초월하여 신성한 영역으로의 통로를 제공했듯이, 이코나의 시글라스와 유리구슬은 감상자를 일상의 경계 너머로 이끈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종교적 상징성을 넘어서 보편적 영성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코나 작가에게 유리구슬이나 시글라스는 단순한 조형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빛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모든 존재의 경계에 놓인 투명성 자체를 상징한다. 이러한 재료들의 선택에서 우리는 프랑스의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과의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장인들과 협업하여 유리구슬 작업을 전개해온 오토니엘은 구슬을 "인생의 한 굽이를 도는 흉터, 기억하고픈 슬픔과 아픔의 부적"이라고 표현했다. 그에게 유리구슬은 개인적 치유의 매개체이자 사회적 소통의 도구였다. 그러나 이코나 작가의 접근은 오토니엘과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오토니엘이 대규모 설치와 건축적 스케일로 유리의 장관을 연출한다면, 이코나는 보다 내밀하고 명상적인 차원에서 빛과 투명성을 탐구한다. 오토니엘의 작업이 바로크적 화려함과 감각적 충격을 추구한다면, 이코나는 동양적 정적(靜寂) 속에서 우주적 질서를 직관하려 한다.
오랜 시간 바다에 몸을 맡겨 자연의 힘으로 다듬어진 시글라스는 기억과 흔적을 머금은 채, 작가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조형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가 영화를 '시간을 조각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듯이, 이코나의 작업에서 시글라스는 바다의 힘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시간의 조각품'이다. 각각의 시글라스는 고유한 역사와 서사를 담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시간의 층위와 우연성의 미학을 탐구한다. 특히 작가의 작품과 작업을 보면 타르코프스키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물과 유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에서 우주정거장 유리창이 내면의 무의식과 외부의 무한을 연결하는 경계였듯이, 이코나의 투명한 재료들은 물질과 정신, 현실과 환상 사이의 '투명한 문턱'이 된다. 시글라스에 담긴 바다의 시간과 유리구슬이 굴절시키는 빛은 감상자를 일상의 물질적 인식을 넘어 명상적이고 영적인 차원으로 이끈다. 아라크네 신화처럼 직조되는 이 작품들은 보이는 것 너머의 세계를 드러내는 투명한 통로이자 치유의 공간이 된다.
거미줄은 세상을 잇는 '실타래'이자, 그리스 신화 속 거미 '아라크네(Arachne)'가 직조하던 창조의 열정과 숙명적 변화를 상징한다. 아라크네는 직조 솜씨를 자랑하여 아테네 여신에게 도전했다가 거미로 변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는다. 이 신화는 인간의 창조적 욕망과 신성에 대한 도전,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와 속죄의 서사를 담고 있다. 이코나 작가는 이 신화를 영적 각성과 예술적 창조의 메타포로 재해석한다. 그녀에게 거미는 파괴적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영적 건축가이며, 거미줄은 보이지 않는 우주의 구조를 시각화하는 매개체이다. 이코나의 작업에서 거미와 거미줄의 이미지는 일반적인 공포나 혐오감을 넘어서 치유와 보호의 상징으로 전환된다. 거미는 많은 문화에서 창조의 여신이나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으며, 아메리카 원주민 전통에서는 '거미 할머니'가 인간에게 직조술을 가르쳐준 존재로 기억된다. 작가의 개인적 체험은 신화적 해석에 깊이를 더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거미를 집 안에 풀어놓았던 기억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생태적 균형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이는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가 테피스트리 수선을 가업으로 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거미 조각을 창조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부르주아에게 거미가 모성과 보호의 상징이었다면, 이코나에게는 치유와 공존의 지혜를 전하는 스승이다.
이코나 작가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작가로, 미대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후 다양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적 정체성을 구축해왔다. 특히 2023 Foundation BAD, 네덜란드 (로테르담), 2022 HOSEKCONTEMPORARY(베를린),2020 Artak350 레지던시 (아이슬란드 그룬다퓌요드), 2016 베니스살롱 (베네치아)등에서 장기간 체류하며 작업했다. 아이슬란드의 극지적 빛과 자연환경, 프랑스 파리의 예술적 전통, 독일 베를린의 실험적 문화, 네덜란드의 혁신적 미술생태계 등 각 지역의 독특한 예술적 토양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북유럽의 자연환경과 빛의 특성은 그녀의 작업에 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와 백야 현상, 북해의 거센 파도에 의해 형성되는 시글라스들은 그녀에게 빛과 투명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했을 것이다. 또한 유럽의 고딕 성당들과 스테인드글라스 전통에 대한 직접적 체험은 그녀의 작업에 역사적 깊이와 문화적 맥락을 부여했다.
베를린에서의 첫 개인전 《Helltasia》(2022)와 로테르담에서의 2인전 《Medium》(2023)를 통해 유럽 미술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2025년 한국에서 개최된 개인전 《아라크네 스피리탈리스》를 통해 국내 관객들과도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현재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고 올 10월 샤페멜레 (알렁송) 레지던시에 선정되어 참여 예정이다.
이상민 통섭미술기행 저자
이코나 작가 노트
나는 빛을 그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우리가 잊고 사는 내면의 울림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나의 작업은 투명성과 침묵, 그리고 사유를 위한 공간을 통해 관람자와 마주하려 한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빛은 단순한 조명이나 장식이 아니라 신성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매개가 된다.
나는 빛을 통해 신을 말하고, 동시에 인간의 고독, 기도, 알 수 없는 세계의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재료로 유리, 레진, 빛, 실, 영상 등 투명함에 반응하는 것들이다.
그 위에 겹겹이 쌓인 구조로 시간의 흐름과 영원의 구조,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드러내 보려 한다.
일상에서 '멈추고 바라보는 순간'의 그 특별한 여운의 울림을 간직하고 표현하고자 한다.
그 순간, 작품은 창(窓)이 되고, 거울이 되며, 기억과 예감의 통로가 된다.
나에게 작업은 질문이다.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향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질문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향한 여정으로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