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Space X는 2026년 4월 21일(화)부터 5월 17일(일)까지 정지숙 작가의 개인전 《A Drift in Nakedness》를 선보입니다. 이번 전시는 소명과 규범이 흐려진 시대 속에서, 자유와 불안을 동시에 지닌 현대인의 상태를 ‘벌거숭이’라는 존재로 풀어내며, 감각과 본능에 의해 지속되는 삶의 방식을 탐구합니다.
정지숙의 작업은 생명체의 근원적인 에너지와 감각에서 출발합니다. 작가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행동과 욕망의 바탕에 놓인 ‘살고자 하는 의지’에 주목하며, 이를 ‘살아있는 덩어리’라는 형태로 시각화합니다. 점토를 기반으로 한 입체 작업과 회화 작업을 통해, 움직이고 성장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의 상태를 표현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체적 감각과 감정, 그리고 세계에 대한 관찰이 뒤섞이며 인간과 생명체, 세계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으로 확장됩니다.
《A Drift in Nakedness》는 의미와 방향이 불분명한 상태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규범이 해체된 자리에서 인간은 불안과 동시에 자유를 마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체로서의 본능과 감각은 삶을 지속하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벌거벗은 채 표류하듯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감각을 회복하고 ‘살아있음’을 체감하는 경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Art Space X presents A Drift in Nakedness, a solo exhibition by Jung Jisook, from April 21 to May 17, 2026. This exhibition explores the condition of contemporary individuals—caught between freedom and anxiety in a time where purpose and norms have become uncertain—through the metaphor of the “naked” figure. It reflects on how life continues to unfold through instinct and sensory experience.
Jung Jisook’s work originates from the fundamental energy and sensorial nature of living beings. The artist focuses on the “will to live” that underlies the desires and behaviors of all organisms, visualizing this concept through what she calls the “living mass.” Using clay-based sculptural forms alongside painting, she expresses states of life that move, grow, and continuously transform. In this process, bodily sensations, emotions, and observations of the world intertwine, blurring the boundaries between the self, living beings, and the world into a unified organic flow.
A Drift in Nakedness reflects on beings that continue moving forward even in the absence of clear meaning or direction. In a condition where established norms have dissolved, humans encounter both anxiety and freedom; yet, their instinct and sensory awareness as living organisms persist in sustaining life. Through the image of drifting in a naked state, the exhibition raises questions about recovering sensory awareness and experiencing the condition of being alive.
정지숙 작가 노트
나는 진리가 궁금한 관찰자이다. 우주의 운행 원리를 알기 위해 외부세계든 나의 내면세계든 모든 것이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죽은 듯 하다가도 봄이 오면 어김없이 싹이 돋고, 암컷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갖은 정성을 들이는 수컷의 모습과, 마치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처럼 돈과 명예를 축적하면서도 사랑이 결국 전부라고 말하는 인간의 모습과, 기후 변화로 인해 이제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다방면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는 지구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문을 열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부끄럽고 초라한 나의 감정과 생각의 흐름,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나의 신체 감각을 지켜본다.
멍하니 반복적인 작업을 하던 어느 날, 기억의 파편과 관찰로 얻은 힌트들이 무질서하게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거구나! ‘생(生)’
정보를 종합해보니 모든 생명체의 욕망과 행동의 근원에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깔려있었다. 언제나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게 하는 에너지 그 자체를 정신분석학자들은 ‘리비도’라 부르는데 처음으로 그 의미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 리비도라는 생의 에너지는 아주 강력하며 생명체의 본능이기에, 이성적인 인간일지라도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동물성이 언제든 비집고 올라오기 십상이다. 그동안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던 고뇌는 못본 척 억눌러야만 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동물로서의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진리를 찾은 기분이었다. 자유분방하며, 다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언제나 즐거움을 추구하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는 것. 아직 사회화되기 전인 나의 유년 시절의 모습이다. 요즘의 나는 그 어릴 적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러한 변화가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나는 생존의 본능을 지닌 생명체이자 작가이다. 작가로서, 내가 찾아낸 이 흥미로운 진리를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이제 ‘살아있음’을 표현해보자. 첫 번째, 살아있는 나. 나의 머리와 신체로 인식되는 살아있는 감정과 감각을 시각적 형상으로 표현한다. 두 번째, 살아있는 생명체 또는 세계. 살아있는 것들의 공통점인-움직인다, 숨 쉰다, 자라난다, 생식·번식한다, 흡수·배출한다-을 ‘생명력’을 키워드로 표현한다. 나, 생명체, 세계는 서로 유사한 점이 많고 경계가 모호하므로 작품 속에서 함께 버무려져 표현된다. 그것을 ‘살아있는 덩어리’라 이름 지었다.
살아있는 덩어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변형과 가소성이 용이한 ‘점토’라는 소재를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점토로 사람 또는 동물을 단순화하여 거의 덩어리에 가깝게 형상을 만들고, 표면에는 점토 알갱이나 일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작고 잡다한 것들, 질감이 재미있는 재료 등을 불규칙하게 뭉쳐 뒤덮었다. 이 생명체 덩어리는 주로 원색적인 색채로 표현했고 전체적 윤곽선이 느슨한 곡선으로 이뤄져 느리게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상에서 사용되거나 버려진 사물을 작업 소재로 끌어오기도 한다. 사라짐, 죽음이 연상되는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그와 대비되는 ‘살아있음’의 기억을 아련하게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한편, 이러한 살아있는 덩어리를 그림으로 표현할 때는, 좀 더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더욱 단순하고 음흉하기도 한 은유적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그림에서 무수한 알갱이, 꾸물거리는 선의 집합과 같은 표현이 특징인데, 이것은 사물을 현미경으로 관찰했을 때의 미시세계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정적으로 보이는 물체도 아주 확대해 보면 그 속에서 아주 작은 물질들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으며, 이것은 아마도 내가 저 우주에서 지구를 한 눈에 바라봤을 때의 모습과 유사할 것이다.
‘살아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당연한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아마도 서른 즈음이었다. 이전과 다르게 신체에 노화의 조짐이 보이면서부터 자연스레 ‘죽음’을 연상했다.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유한한 삶을 사는 생명체였던 것이다. 참 애처로운 일이다. 자신만이 온전히 알고 있는 한 우주가 사라진다니. 하지만 점점 풍성해지는 나의 우주를 굴려 가며, 같거나 다른 너의 우주를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니 너도, 나도 일생에 실컷 사랑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길.